벽이나 바닥에 붙어 물을 뿌리며 도는 기계, 코어 드릴입니다. 배관·전선이 지나갈 구멍을 어떻게 뚫는지, 물은 왜 뿌리는지, 철근을 맞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케미컬 앵커는 왜 구멍 청소가 전부인지 정리했습니다.
골조가 다 올라간 건물 안을 지나가다 보면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벽이나 바닥에 쇠기둥 하나가 볼트로 붙어 있고, 그 위에 달린 기계가 웅웅 돌아가는데 바닥엔 회색 물이 흥건합니다. 한참 뒤 기계를 떼고 나면 벽에는 자로 잰 듯 매끈한 동그란 구멍이 남아 있죠. "망치로 깬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지?" 싶은 이 기계가 코어 드릴입니다. 현장에서는 줄여서 코어, 또는 코아라고 부르고, 이 작업을 하는 팀을 코아팀이라고 합니다. 하는 일은 하나, 콘크리트에 배관·전선·덕트가 지나갈 동그란 길을 내는 일입니다. 구멍을 깨서 넓히는 게 아니라, 원통 날로 테두리만 잘라서 가운데 콘크리트를 기둥째 뽑아냅니다.
코어 드릴의 날(코어 비트)은 속이 빈 얇은 쇠 원통입니다. 원통 끝 테두리에 다이아몬드 가루를 박아 굳힌 작은 날 조각(세그먼트)들이 빙 둘러 붙어 있습니다. 이 원통이 돌면서 콘크리트를 동그랗게 갈아 들어가는 거죠. 테두리만 갈아 내기 때문에 다 뚫고 나면 원통 안에는 콘크리트가 원기둥 모양으로 통째로 남습니다. 이걸 꺼낸 덩어리를 코어라고 부르고, 장비 이름도 여기서 왔습니다. 콘크리트 강도를 시험할 때 구조물에서 시료를 떠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큰 구멍을 뚫을 때는 기계를 손으로 들지 않습니다. 톱니가 새겨진 쇠기둥(스탠드)을 바닥이나 벽에 단단히 고정하고, 옆 손잡이를 돌려 모터를 조금씩 밀어 넣습니다. 해외 공구 업계에서도 작은 구멍은 손에 드는 기계로, 큰 구멍은 스탠드에 세운 기계로 뚫으라고 안내합니다.
건물 안에는 물·공기·전기가 층과 방을 넘나들며 지나갑니다. 위생배관, 소방배관, 전선관, 공조 덕트 모두 어딘가에서는 바닥(슬래브)이나 벽을 뚫고 지나가야 합니다. 원래는 콘크리트를 붓기 전에 그 자리에 통(슬리브)을 미리 묻어 구멍을 남겨 둡니다. 그런데 설계가 바뀌거나, 장비 위치가 달라지거나, 미리 묻은 자리가 조금 어긋나면 이미 굳은 콘크리트에 새 구멍이 필요해집니다. 그때 들어오는 게 코어 드릴입니다. 그래서 코어 작업은 골조가 끝난 뒤 설비·전기 공사가 한창일 때 몰립니다. 배관이 많은 반도체 공장 현장에서는 코아팀만 따로 뽑는 공고가 올라올 정도입니다.
코어 드릴에 호스로 물을 대는 데는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 날을 식힌다: 다이아몬드 날이 콘크리트와 비비며 생기는 열을 물이 빼앗아 갑니다. 열이 쌓이면 날이 금방 무뎌집니다. - 가루를 씻어 낸다: 갈려 나온 가루가 물과 섞여 회색 흙탕물(슬러리)이 되어 빠져나옵니다. 가루가 홈에 쌓이면 날이 걸립니다. - 먼지를 잡는다: 콘크리트 가루가 공기 중으로 날리지 않습니다. 물을 많이 뿌릴수록 좋은 것도 아닙니다. 미국 코어 장비 업체 안내서는 물이 너무 세면 날을 갈아 주는 모래 알갱이까지 씻겨 나가 오히려 안 뚫린다며, 크림을 듬뿍 넣은 커피 정도의 흙탕물이 나오게 맞추라고 설명합니다. 천장처럼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곳은 물 없이 뚫는 건식 코어를 쓰기도 합니다. 이때는 기계에 집진기를 연결해 가루를 빨아들입니다.
코어 드릴은 전기로 돌면서 물을 뿌립니다. 해외 장비 업체 관계자도 "물과 전기를 같이 쓰는 위험한 조합"이라고 표현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우리 법은 이 부분을 분명히 정해 두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04조는 물 같은 전기가 잘 통하는 액체가 있는 젖은 장소에서 쓰는 전기 기계에 감전 방지용 누전차단기를 달게 하고, 그 차단기는 30밀리암페어 이하에서 0.03초 안에 끊겨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쓰기 전에 차단기가 제대로 떨어지는지 점검하라는 내용도 같은 조항에 있습니다. 또 하나 무서운 건 날이 걸릴 때입니다. 날이 철근이나 틈에 꽉 물리면 날 대신 기계가 반대로 홱 돌아갑니다. 그래서 큰 구멍은 스탠드를 앵커 볼트나 진공 흡착판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뚫습니다. 요즘 기계에는 걸리는 순간 힘을 끊어 주는 미끄럼 클러치나 회전을 감지해 멈추는 장치가 들어가는 추세입니다.
콘크리트 속에는 철근이 촘촘히 들어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날은 철근도 자를 수 있어서, 아무 데나 뚫으면 건물을 버티는 철근이 그대로 잘려 나갑니다. 날도 철근을 만나면 크게 상하고, 앞에서 말한 기계가 돌아가는 사고도 이때 잘 납니다. 그래서 요즘은 뚫기 전에 철근 탐지기로 먼저 훑습니다. 전파(레이더)나 자기장으로 콘크리트 속 철근 위치를 찾고, 바닥에 색 스프레이로 줄을 그어 표시한 뒤 그 사이로 구멍 자리를 잡습니다. 해외 현장에서는 철근, 긴장 케이블, 철골보를 서로 다른 색으로 칠해 구분한 사례도 소개돼 있습니다.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게 긴장 케이블이 든 바닥(포스트텐션 슬래브)입니다. 주차장·물류창고처럼 기둥 간격이 넓은 건물에 쓰이는데, 팽팽하게 당겨 둔 강선이 잘리면 튕겨 나가 사람을 다치게 하고 바닥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해외 자료들은 경고합니다. 뚫다가 날에 쇠가 걸리는 느낌이 들면 멈추고 관리감독자에게 먼저 알립니다. 계속 뚫어도 되는지는 구조를 아는 사람이 판단할 일입니다.
예전에는 콘크리트에 구멍을 낼 때 정과 망치, 또는 해머드릴로 테두리를 따라 잔구멍을 내고 가운데를 깨냈습니다. 시끄럽고, 구멍 가장자리가 울퉁불퉁하고, 무엇보다 하얀 가루가 작업자 얼굴로 그대로 날아왔습니다. 이 가루가 문제입니다. 콘크리트 속 모래·돌에는 결정형 유리규산이 들어 있는데, 우리나라 노출기준은 0.05mg/㎥로 정해져 있습니다. 폐에 쌓이면 진폐 같은 병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각국이 관리하는 물질입니다. 미국 산업안전청(OSHA) 규정은 드릴 작업을 할 때 먼지를 빨아들이는 덮개와 고성능 필터 집진기를 쓰라고 정해 두었습니다. 지금은 순서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① 탐지기로 철근 위치를 먼저 찾고 ② 다이아몬드 코어로 물을 쓰거나 집진기를 달아 뚫고 ③ 큰 구멍은 스탠드를 고정해 기계 힘으로 밀어 넣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간 곳도 있습니다. 스위스 공구 업체 힐티는 2020년 설계 도면(BIM)을 읽고 천장에 앵커 구멍을 스스로 찾아 뚫는 로봇을 내놓았고, 국내에서도 삼성물산이 드릴 타공·앵커 시공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구멍을 뚫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배관을 매달 행거, 장비 받침, 난간 같은 걸 콘크리트에 고정하려면 앵커를 박아야 하는데, 그중 요즘 많이 쓰는 게 케미컬 앵커입니다. 구멍에 접착 수지를 짜 넣고 볼트(나사봉)를 꽂아 굳히는 방식입니다. 볼트가 벌어지며 버티는 일반 앵커와 달리 수지가 콘크리트와 볼트를 붙잡습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수지가 아니라 구멍 청소입니다. 이탈리아 앵커 제조사 인덱스는 구멍을 청소하지 않거나 잘못 청소하면 버티는 힘이 최대 5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시카 같은 제조사 안내서도 구멍 바닥부터 바람으로 불어 내고, 브러시로 닦고, 다시 불기를 두 번 이상 하라고 적고 있습니다. 젖은 구멍에 시공한 앵커가 가장 불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서, 물로 뚫은 구멍은 물기를 빼는 것도 중요합니다. 수지가 굳는 시간은 제품과 온도마다 다르니 제품 설명서의 표를 따릅니다. 굳기 전에 볼트를 건드리거나 짐을 거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코어 작업 근처에서 일한다면 이것만 기억해 두면 됩니다. - 위층에서 바닥을 뚫으면 다 뚫리는 순간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래층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아래층에 줄이 쳐져 있으면 돌아가세요. - 회색 흙탕물이 흐른 바닥은 생각보다 미끄럽고, 그 물에 전선이 잠겨 있을 수 있습니다. - 건식으로 뚫는 날은 방진 마스크를 챙기세요. 일당은 공고마다 다릅니다. 최근 건설UP에 올라온 용인 SK 원삼 현장 코아팀 공고는 기공 22만원(3년 이상 경력), 조공 18만원을 제시했습니다. 코아팀은 지역과 현장에 따라 조건이 달라서, 건설UP 홈페이지에서 최신 공고를 직접 비교해 보시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현장에서 기억할 것 - 코어 작업 아래층에 줄이 쳐져 있으면 들어가지 않기 - 회색 흙탕물 고인 바닥은 미끄럽고 전선이 잠겨 있을 수 있음 - 물 쓰는 코어 드릴은 누전차단기 연결부터 확인하기 - 날에 쇠가 걸리는 느낌이 들면 멈추고 알리기 - 건식으로 뚫는 날은 방진 마스크 챙기기 헷갈리기 쉬운 것 - 코어는 깨는 게 아니라 원통 날로 테두리만 잘라 뽑아내는 것 - 물은 날 식히기·가루 빼기·먼지 잡기 세 가지 역할 - 케미컬 앵커는 수지보다 구멍 청소가 먼저 - 앵커 수지 굳는 시간은 제품과 온도마다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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