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 풍력발전단지에서 날개를 보수하던 작업자 3명이 화재로 숨진 지 6개월여 만인 10월 12일, 사고 현장에서 첫 합동감식이 열렸다. 불이 난 곳이 지상 약 80m 높이여서 그동안 현장 감식조차 하지 못했다.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는 3월 23일 오후 1시 11분쯤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 풍력발전단지 안 19호기에서 났다. 당시 발전기 날개(블레이드)에 생긴 균열을 보수하려고 유지·보수업체 소속 작업자 3명이 발전기 위쪽에 올라가 있었다. 작업 도중 불이 났고, 세 사람 모두 숨졌다.
풍력발전기는 날개와 발전 장치가 타워 꼭대기에 달려 있다. 보수 작업자는 타워 안을 타고 올라가 그 높이에서 일한다. 일하는 자리가 곧 수십 미터 상공이라는 뜻이다.
사망 사고가 나면 보통 며칠 안에 경찰과 관계 기관이 현장을 함께 살핀다. 이번에는 그게 되지 않았다. 경찰은 사고 지점이 지상 약 80m 높이에 있어 대형 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들어갈 진입로를 새로 만들어야 했고, 강풍에 대비한 안전 대책도 필요해 감식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감식하는 사람이 다시 위험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불에 탄 설비를 안전하게 살필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야 했다는 얘기다. 그 준비에 반년이 넘게 걸렸다.
올라가는 데도, 내려오는 데도, 사고 뒤 살펴보는 데도 장비와 시간이 드는 자리였다.
합동감식은 경북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가 맡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소방, 한국전기안전공사가 함께했다. 감식팀은 불에 탄 발전 장치를 중심으로 불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살폈다. 유족도 현장에 나와 감식을 지켜봤다.
수사는 감식보다 먼저 시작됐다. 경찰은 4월 6일 수사관과 근로감독관 40여 명을 투입해 발전단지 운영사를 압수수색했고, 사고를 막기 위한 지침과 안전 조치가 제대로 지켜졌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감식 내용과 최종 수사 결과를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불이 왜 났는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원인이 나오기 전이라도 이 사고가 일어난 자리의 조건은 분명하다. 높은 곳이고, 공간이 좁고, 내려오는 길이 정해져 있다. 풍력발전기만 그런 게 아니다. 타워크레인 운전실과 마스트, 굴뚝과 사일로, 플랜트의 탑 구조물, 고소작업대 위도 같은 조건이다.
이런 자리에서는 불이나 연기가 내려오는 길을 막는 순간 피할 곳이 없어진다. 그래서 올라가기 전에 내려오는 길이 막혔을 때 쓸 다른 방법이 있는지, 소화기가 손 닿는 곳에 있는지, 아래와 연락할 수단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용접이나 절단처럼 불티가 튀는 작업이 섞이면 주변의 탈 것을 치우거나 덮고, 가연물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는 화재감시자를 따로 두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기본이다. 그리고 산업재해가 일어날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에 있는 근로자의 권리다.
작업 전에 확인할 것 - 올라가기 전에 내려오는 길과 막혔을 때 쓸 다른 방법 확인하기 - 소화기가 작업 자리에서 손 닿는 곳에 있는지 보기 - 아래에 있는 사람과 연락할 수단이 되는지 미리 시험해 보기 - 불티가 튀는 작업이면 주변의 탈 것을 치우거나 덮었는지 보기
이럴 땐 멈추기 - 타는 냄새나 연기가 나면 원인을 찾기 전에 먼저 내려오기 - 바람이 강해져 몸을 가누기 어려우면 작업 멈추기 - 내려오는 길이 자재나 장비로 막혀 있으면 올라가지 않기
알아 둘 권리 -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음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 가연물 가까이에서 불티가 튀는 작업을 하면 화재감시자를 따로 두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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